목차

태그

시즌 -


반갑다

너희 철학자 하나가 말한 적이 있다. "어둠의 삶이 고통에 가라앉고 슬픔에서 허우적대는 삶이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슬픔이란 없다. 슬픔은 죽음에 삼켜지는 것이며, 죽는 것과 죽어가는 것이야말로 어둠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는 구두장이였다. 맞는 말이었지. 그리고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눈에 보이는 세상이란 영원한 빛과 영원한 어둠의 표현이며, 영원은 바로 그런 영원한 대조로부터 드러난다는 말이다. 만물이 태초의 불완전한 정체 상태에서 벗어나 더욱 진실한 형체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몰락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단이라고? 그렇다면 날 이단의 교주라 불러라. 그 철학자는 장 질환으로 죽었다. 존재하지 않는 자는 고통을 받을 수도 없으며, 윤리의 구속을 받지도 않는다. 선을 이루기 위한 길이 고통을 없애는 것이라면,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자만이 존재하도록 허락받아야 한다. 비존재보다 존재를 선호하고, 독을 품은 바람보다는 기름진 땅을 선호하는 것이 생명의 본성이다. 입을 열어 그 바람을 받아들이는 자는, 육신의 후손도 사고의 후손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끝날 수가 없고 그 무엇도 택할 수 없는 세상이 얼마나 괴이할지 상상해 보라. 고통을 받으면서 절대 죽지 못하는 생명들을 상상해 보라. 아무 맥락도 정정도 없이 성해질 거짓들을 상상해 보라. 내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


정원사와 키질꾼

옛날 옛적,* 한 정원에** 정원사와 키질꾼이 함께 살았다***.

*시간이 아직 시작되지 않은 때이므로 옛날 전이다.

** 존재의 형상을 결정하는 가능성의 장이었다.

***우리는 살지 않았다. 우리는 수학적 구조에서 비롯한 존재론적 역학 관계의 원칙으로서, 소수만큼이나 실체가 없고 필연적으로 존재했을 뿐이다.

그들은 존재해야만 했으므로 존재했다. 구성 요소는 없었으며, 인과 관계도 없었기에 그들을 부분으로 나누어 그 근원의 도식을 파악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들로 자란 본연의 인간 배아를 찾아 역사의 탯줄을 따라간다면, 그 여정은 바로 이 정원에서 끝나고 말 것이다.

아침이면 정원사는 정원의 젖은 양토에 씨앗을 밀어 넣고, 그것들이 무엇으로 자라는지 보려 했다.

저녁이면 키질꾼이 그날의 작물을 거두고, 성공할 만한 것과 실패한 것을 가려냈다.

낮은 시간 전체보다도 길었고, 밤은 떨어지는 설탕 결정에서 번뜩이는 빛보다도 빨랐다. 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곤충들과 뿌리 사이를 기어다니는 벌레들이 과거에 존재하는 최초의 기울기였고 최초의 생명의 발전기였으며, 앞으로도 그것일지 모를 무엇을 먹어 치웠다. 비는 없는 하늘에서 떨어졌다. 목소리는 입도 의미도 없이 말했다. 은빛 날개가 달린 나무가 꽃피우고 열매 맺고 깃털을 떨어뜨리고 또 꽃피웠다.